어떤 일을 시작한다. 거친 호흡, 손바닥에 살짝 맺히는 땀, '이게 과연 옳은 길일까?'라는 물음이 머리를 스친다. 우리는 자주 큰 결심 끝에 첫걸음을 뗀 후에도 두려움이라는 벽 앞에서 주저앉곤 한다. 친구와 대화하다 보면 "나도 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무서워서 못 해."라는 말을 듣는다. 그때마다 나 역시 머릿속으로 내 작은 실패와 망설임의 순간들을 한다발 떠올린다.
아마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족쇄를 평생 차고 사는 것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한 발 더 내딛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스티브잡스, 이건희, 정주영 등이 있지만 이렇게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 말고도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바로 내가 아는 K다.
심사숙고 끝에 전업작가의 길로 뛰어든 K는 한때 잘나가는 대기업의 직장인이었다. 꽤 안정되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삶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언젠가부터 마음속 여백처럼 남아있는 '글을 쓰고 시은 욕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던 이야기들이, 늘 가슴 안에서 출구를 찾고 있었다. 결국 K는 어느 날 사표를 내고, 모은 돈을 쪼개어 조용한 동네로 거처를 옮겼다. 그러곤 채용 공고 대신 원고지와 마주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무얼 할 거야?" "실패하면 어떻게 할 건데?"와 같은 주변의 시선보다, 자기 안에서 꿈틀대는 불안과 두려움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매일 책상을 펴고 노트를 열었지만, 멍하게 흘러가는 시간과 백지의 화면을 바라보는 내내 손끝이 차가웠다.
흔히들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스스로 확신을 가지라'거나, '목표를 세분화하라','성공한 사람을 롤모델로 삼으라'와 같은 충고를 하곤 한다. 상투적인 방법이 나름 도움될 때도 있지만 K는 조금 다른 창의적 방법을 택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바로 '실패'와 '불확실성'을 일상 속에서 의식적으로 조롱하기 시작했다. 즉, 멀리 밀치는 대신 실패를 하나의 놀이이자 '주제'로 삼았다. 글을 쓸 때마다, 맨 처음엔 일부러 말이 안 되는, 심지어 유치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부터 써보는 것이었다. "실패작 10편 만들기" "오늘의 최소 작문량 채우기-내용은 못생겨도 괜찮음" 이런 미션을 하루의 첫 일과로 삼았다.
그 '실패'라고 느껴지는 글귀들을 친구들과 함께 '실패 낭독회'에서 큰 소리로 읽거나, 온라인에서 웃으며 공유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력과 맞서 싸우기 대신, 그것을 일종의 놀이로 대하는 과정에서 K는 두려움에 대한 태도 자체가 바뀌었다고 한다. 실패와 좌절을 더 이상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것이다.
이후 K는 자신이 가지는 불안과 두려움의 정체를 더 명확히 파악했다. 서퍼가 파도를 탈 때 작은 물결만 반복된다면 그 어떤 쾌감과 발전을 이룰 수 없다. 큰 물결에 넘어지고 일어섰다 반복하며 파도 타는 법을 익히게 되는 것이다. K는 불안과 두려움도 이 물결과 같다고 한다. 글을 쓸때 밀려오는 두려움, 이를 극복하려 마음 먹기 보단, 두려움을 안고 계속하기로 했다. 마치 오월동주처럼 말이다.
두려움을 놀이로 대하기, 그냥 안고 가기 이 두 가지 방법으로 K는 현명하게 글을 쓰고 있다.
당신도 혹시 두려움 앞에 서 있다면 K씨의 방법을 적극 활용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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