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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티와 레비나스의 관점을 통해 바라본 사랑

철학 그리고 일상

by beatopdog 2025. 7. 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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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뭘까? 사랑은 남녀의 상호작용으로 서로 밀고 당기는 미묘함 속에 피어나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의 향연이다. 사랑을 하면 자신의 신념이나 규칙을 상대를 위해 어기는 경우가 있다. 사소하게는 자신의 습관을, 나아가서는 자신의 철학까지도. 사랑에 눈이 멀었다는 말처럼 고유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이런 사랑을 철학자인 로티와 레비나스의 관점을 통해 바라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사실 로티와 레비나스는 사랑 자체를 다루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랑도 철학의 한 부분이기에 그들의 관점을 살려 사랑을 해석해 보고자 한다.

 

로티와 레비나스에 대한 기본 배경지식이 필요 없도록 쓰겠지만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서적을 통해 만나보기 바란다.

 

로티는 이 세상의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과 그것에 대한 서술들은 모두 우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주장을 자아와 언어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자아와 언어는 역사적 구성물이며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에 세계의 진리를 연결할 수단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개인은 '언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스스로 자아를 창조할 수 밖에 없다. 자아를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서술하며, 나아가 모든 서사가 재서술의 연속인 이상 우리는 '아이러니'한 존재이다. 그래서 자신을 창조하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아이러니스트'라 칭했다.

 

'아이러니스트'는 너도 맞고, 나도 맞기 때문에 공통된 규범의 합의점을 찾기 쉽지 않다는 함정에 빠진다. 자 그럼 여기에서 사랑에 빠진 남녀들 모두가 아이러니스트라면 어떨까? 아마 사랑이라는 걸 다시 정의해야 할 수도 있는 혼돈 그 자체의 상황이 상상되지 않는가? 지나친 개인 중심주의로 인해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이 극에 달하는 상황, 서로를 파괴하는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창조한 나의 자아(a)와 상대방이 창조한 상대방의 자아(b) 두 명이 겹쳐 만들어가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일까? 로티는 과거부터 객관적인 진리(표상주의)라고 여겨지던 것들을 우연으로 결합된 '역사적 구성물'에 불과(반표상주의)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우리가 따라야할 객관적 진리란 없다고 말한다. 사랑도 그러하다면 a와b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로티는 사랑에도 객관적 진리라 믿는 것들, 사랑은 주는 것이다와 같은 개념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아이러니스트' 와'반표상주의'는 상대주의의 함정인,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축소시킨다. 아니, 없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사랑은 남녀 간의 감정이나 배려가 필요한 어떤 과정이라 본다면 로티는 그런 과정에서 주고 받는 상호작용이 사랑이라 볼 수 있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사랑에도 객관적 진리라 믿는 것들의 예외가 존재할 수 있다는 의문과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이다.

 

로티가 '자기' 중심을 강조한다면 레비나스는 '타자'와의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의 유한성이 극복된다는 논리를 견지한다. 이는 서구 전통론인 '나'라는 존재에 의해 '타자'가 정의된다는 것과는 상반되며, '타자'가 존재함으로써 '나'는 윤리적 책임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정리하자면 로티는 타자와의 관계는 개인의 자아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고, 레비나스는 타자에 의해 개인이 윤리적 책임을 가진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인식 주체 중심의 존재론을 비판했는데, '나'뿐만 아닌 '타자'조차도 '나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이론으로 보고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로 발전한다고 믿었다.

 

자 그럼 레비나스 철학의 관점에서 바라본 사랑은 어떨까?

 

레비나스는 '타자와 나는 영감의 관계'라 말하며 자신은 타자가 유린되거나 다치지 않도록 수호하는 일종의 '인질'이라 표현한다. 조금 극단적인 면이 없지 않지만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레비나스의 이론은 매우 이상적이고 세상에 둘도 없을 사랑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딱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신의 규칙을 깨고, 상대를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레비나스의 사랑이라면, 내가 너무 소중해서 상대를 위해 그 어떤 것도 내어줄 수 없는 게 로티의 사랑 아닐까? 아니면 둘의 조합인 '나를 지키면서 상대를 위할 줄 아는' 사랑이 가장 이상적인 걸까?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떤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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